디지털로 기록하던 삶, 나는 점점 기억하지 못했다
나는 매일 스마트폰에 일정을 입력하고, 메모 앱에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할 일을 전부 디지털에 저장하며 살아왔다. 처음엔 편리했다. 클릭 몇 번으로 모든 걸 정리할 수 있었고, 시간도 절약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내 삶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기 시작했다.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를 정말로 떠올리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기록은 많았지만, 그것은 ‘나의 기록’ 같지 않았다. 정보는 남았지만, ‘기억’은 남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14일 동안 종이 다이어리만 사용해보기로 했다. 디지털 없이, 손으로 쓰는 일상의 흐름 속에서 나의 하루는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했다.
종이 다이어리를 쓴 첫 7일, 나와 마주한 시간
처음 종이 다이어리를 펼쳤을 때, 나는 꽤 오래 망설였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고, 스마트폰처럼 ‘자동 저장’이 없다는 사실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하루 이틀, 일정과 할 일을 손으로 직접 적기 시작하면서 내 사고의 흐름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할 일을 적기 전에 ‘이건 정말 중요한가?’를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고, 작은 일이라도 글자로 적어두니 행동으로 옮기는 속도도 빨라졌다.
또한, 손글씨로 적은 기록은 기계적으로 쓴 스마트폰 메모보다 감정이 담긴 흔적처럼 느껴졌다.
하루의 끝엔 짧게나마 그날 있었던 일이나 기분을 적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점점 하루의 마무리를 글로 하는 습관이 만들어졌다. 이런 단순한 기록이 나를 중심으로 하루를 다시 정리해주는 느낌을 주었다.
두 번째 7일, 기록이 기억이 되고 루틴이 되었다
8일째부터는 다이어리에 글을 쓰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일정을 계획하고, 그날의 감정을 적고, 한 줄 소감을 남기는 루틴이 만들어졌다.
무엇보다 놀라운 변화는 내가 하루를 더 ‘선명하게’ 기억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스마트폰으로 메모하던 시절엔 ‘기록했지만 잊어버리는’ 일이 많았는데, 종이 다이어리에 직접 쓴 내용은 머릿속에도 남고, 마음에도 더 오래 남는 느낌이었다.
또한 종이 다이어리를 쓰는 동안 자연스럽게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줄어들었다. 특히 아침과 자기 전, 스마트폰 대신 펜을 잡는 시간이 생기면서 스크롤보다 사색의 시간이 늘었다. 이건 내 일상에 작지만 분명한 변화를 만들어줬다.
손으로 쓴 하루가 나를 회복시켰다
스마트폰 대신 종이 다이어리를 쓴 14일은 기록을 넘어서 나와 다시 연결되는 시간이었다. 디지털은 빠르고 효율적이지만, 그만큼 나를 소외시키는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손글씨로 적은 글에는 감정이 담겼고, 내 하루가 담겼고, 기억하고 싶은 삶의 조각들이 남았다.
이제 나는 다이어리를 쓰는 일이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스스로를 챙기는 습관이 되었다고 느낀다. 앞으로도 스마트폰은 계속 사용할 것이다. 하지만 내 하루의 시작과 끝은 가능한 한 종이 위에서 마무리하고 싶다.
그건 결국, 나를 잊지 않기 위한 작고 확실한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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